한국 민주주의에서 불교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단지 공략하기 쉬운 표받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것은 불교계 스스로가 자초한 업보이며 정치인을 탓하기에 앞서 불교계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스님)가 2일 오후 2시 국제회의장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변화와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란 주제로 개최한 1차 종책토론회에서 손혁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이같이 주장했다.

손혁재 교수는 이날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변화에 따른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건국 초기에 영국의 한 신문기자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이날 수 없듯이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국의 민주주의는 숱한 역경을 거쳤다”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순탄하게 발전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손혁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손혁재 교수는 “그나마도 이명박 정부에서 민주주의는 뒷걸음쳤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한국사회는 전방위적으로 후퇴했다”고 평가하면서 ▶상위 1%만을 위한 정책과 신자유주의의 노골화 ▶민생 위기는 심각 ▶과거 군부독재시절보다도 더 심각하게 민주주의 무시 ▶남북 접촉 중단 등이 이명박 정부의 초라한 성적표라면서 “반민주 정권, 민생파탄 정권, 환경파괴 토건 정권, 남북대결 정권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손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국정운영의 기본철학과 원칙이 없는 실용주의”라고 비판하면서, ▶투명성, 민주성, 형평성, 국민정서 무시 ▶권력기관들을 통치해 동원하면서 공안세력이 국정원영의 전면에 나서는 공안통치 부활 ▶국민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국민 탄압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또, ‘소통 없는 일방독주’로도 평가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검찰권의 중립성은 상실되어 충실한 권력의 도구가 됐고, 경찰은 권력을 지키는 사병집단으로 전락했다. 민주주의 수준의 척도인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역사 교과서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뜯어 고치고 미래지향적 평화통일 교육을 퇴행적 냉전논리로 후퇴시켰다”면서 “국가폭력이 재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입법기관인 국회의 활동에 대해서도 “입법전쟁”이라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미디어법 억지 통과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적시하면서 “한나라당은 군사작전 하듯이 입법을 밀어붙이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합법적인 절차라든가 국민여론은 무시한 채 무조건 밀어 붙이는 ‘입법전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소영정권, 강부자정권, 1%정권이란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특권사회, 소수사회에서 지역갈등과 계층갈등은 확대 재생산됐고, 삽질이란 말로 표현되는 토목공사식 성장정책에 생태적 가치나 지속가능발전은 무시됐다. 문화와 예술의 상상력은 실종되었고, 창조적 가치와 다양성도 상실됐다”면서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구시대적 가치가 부활했다”고 주장했다.

△한국민주주의의 정치사적 변화와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주제로 한 종책토론회는 정웅기 불시넷 운영위원장(왼쪽부터)의 사회로 정대화 교수, 박명호 교수, 손혁재 교수, 퇴휴스님, 박한용 실장이 각각 발제와 토론를 맡았다.

손혁재 교수는 “인구비율로 볼 때 대통령 선거에서 불교계의 영향력이 가장 크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역대 선거에서 불교계는 그 비중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정치권은 불교계는 단지 공략하기 쉬운 표밭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이라며 “정치권에 비친 불교계의 인상은 총무원만 잡으면 불교계는 끝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그러다보니 후보들이 불교계에 약속한 정책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불교계 스스로가 자초한 업보”라면서 “불교계가 불국토 실현이 목적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특정 정권, 특정 개인 정치지도자에게 매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인들로 하여금 불교를 쉽게 보고 불교정책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불교도 국가와 사회의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손혁재 교수는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이 정치적 종교로 바뀌어서는 안된다”면서 “도슨의 말처럼 정치적 종교는 종교도 해치고 정치도 해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교분리에 대해서도 손 교수는 “정교분리란 신앙의 자유를 국가권력이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 종교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나라가 특정종교에게 특별한 법령적 지지나 재정적 원조를 해서는 안 되고 종교에 대해서 중립적이어야 한다”면서 “불교에서는 출가 정신이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해주려는 것(慈)과 남들의 고통을 없애주려는 것(悲)은 모두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정신”이라면서 “잘못된 공동체 사회를 상생, 협력, 조화, 사랑, 평화가 지배적인 만민평등의 진정한 인간공동체로 바꾸려는 노력이 바로 출가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가는 소극적으로는 무소유, 적극적으로는 방생을 뜻한다”며 “자기를 위해 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더 가지려는 소유욕을 버리고, 나아가 자기보다 남을 더 살리려는 행위가 바로 출가”라고 주장했다.

△불교사회연구소가 주최한 1차 종책토론회가 2일 오후 2시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토론자로 나선 박한영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도 한국 민주주의에서 불교의 역할을 가로막는 것은 ‘출세간’의 종교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손혁재 교수의 “전정한 인간공동체로 바꾸려는 노력이 출가 정신”이라고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박한용 실장은 “세간의 일에 간섭하지 아니한다는 식의 현실방관과 세간에 대한 출세간의 우월적 인식 자체가 비불교적”이라며 “출세간이라는 말에 걸리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세속의 일은 잘 모르고 보편적 진리만 외치는 것은 일종의 기만행위”라면서 “자산은 풍부하면서 실천은 빈약한 현대 한국불교를 내면적 수행과 사회 실천을 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신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대표 퇴휴스님 역시 불교계의 영향력 부재를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계의 소극적 대응”에서 찾았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대표 퇴휴스님

그러면서 퇴휴스님은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두물머리의 유기농 재배지역의 철거문제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의 반대투쟁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천주교를 지켜보면서 상대적으로 허약한 불교계 운동의 한계를 절감했다”며 “불교계 시민사회의 역량부족”을 지적했다. 

퇴휴스님은 이어 “시민사회의 역량강화를 위해 종단차원의 지원책이 절실히 요청된다”면서 ▶NGO단체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수 있는 회관 건립 ▶일정기간 사무실이나 강의실의 무상임대 ▶활동가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훈련이나 재교육을 위한 장학사업 ▶스님들의 승가고시 응시자격에 시민운동 활동 포함 ▶스님들의 인사고가에 반영 ▶스님들이 최소한 하나의 NGO에 의무적 참여 ▶종단 각종 승가교육에 NGO 관련 강좌개설 등을 제시했다.

박한용 실장은 “스님들에게 사회 공부를 시키고 사회적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도인보다 보살이 필요한 시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실장은 “도인은 그만 나와도 된다. 심지어 중세적 냄새가 나는 것마저도 정통불교로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무엇보다 총무원은 더 이상 종권 투쟁이나 문중 파벌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며 세속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예속화한 지난 날의 과오가 청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에서 불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 선거에 있어 불교계가 섣불리 불자 대통령이나 불교의 확산을 꾀하는 것은 자칫 불교를 통속화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손혁재 교수는 주장했다.

손혁재 교수는 “지금까지 각 후보의 공약을 일방적으로 들어보는 수준에 그쳤으나 이제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공약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도 “불교계만의 이익을 위한 공약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의 후보 자격을 따져봐야 한다면서 ▶국정수행 및 통합조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민주성과 개혁성을 갖추고 있는가 ▶일관성과 책임감을 지녀 신뢰할만한가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가 등을 제시했다.

이날 종책토론회는 정웅기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 교수가 “2012년,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전망‘ ▶손혁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변화에 따른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과제“를 주제발제했다.

또, 토론자에는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대표 퇴휴스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참여했다.

하경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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